웰컴 투 더 캘리포니아!
<사진 1. 올해(2008년) 홍콩 출장 갔다가 촬영했던 홍콩의 캘리포니아 피트니스 센터 사진이다. 지금보니 더욱 씁쓸하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오는 오후 5시...
"따르릉! ~
"XXX(회사명) XXX 입니다."
"회원님, 안녕하세요? 저 캘리포니아 XX입니다."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할 때까지 나는 그 전화가 요즘 PT(퍼스널 트레이너)를 여러가지 이유로
계속 연기한 나를 닥달하는 트레이너의 전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는 예전과는 달랐다.
"회원님, 정말 죄송한데..."
이상하다. 자신이 PT 일정을 변경하는 것 빼고는 별로 죄송할 것이 없는데,
이번 주에 PT 일정도 없는데...
"저희 회사가 오늘 부로 문을 닫아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현재 남아있는 세션들은
진행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남은 카드값이 서두로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트레이너의 미안한 목소리는 이어졌다."혹시 카드 할부 같은 것, 아직 납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구제받을 수 있다는 방법도 있다는 것 같은데, 그 방법 빨리 찾아서 시도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한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네요. 나중에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면 좋겠어요."
1분이 채되지 않는 전화통화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이었고, 그 영화의 주인공은 나였다.
작년에 별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았던 '발리에서 생긴 일'의 후속편 'Welcome to California!'는 이렇게 시작됬다.
오후 5시.
금융기관은 영업을 마치지 않더라도 통화량이 폭주하거나 전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없는 시간. 더구나 퇴근 시간을 앞둔 직장인은 대게 바쁘다.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계약서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속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계약서를 찾을 수가 있었다. 계약서를 보니 내 금전적인 피해는 확실했다.
작년 말 한 해가 가기 전에 보람있는 일을 하고자 고심고심 하다가 캘리포니아의 문을 두드렸다. 사실 캘리포니아는 내가 군대를 가기 전에 약간의 로망도 서려있는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낡은 명동클럽이었지만 입대 전 약 15일의 체험권 사용은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있다.캘리포니아를 선택한 이유는 우습게도 발리 토탈 피트니스가 폐업을 한 것을 보고 결정을 한 일이었다.
나름 머리를 굴린다고 발리가 망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가 회원수 증대를 위해서 회원권의 가격을 내릴 것이라고 짐작을 했고 역시나 내 예상대로 회원권의 가격은 200만원 이하로 거래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악마의 유혹이지만, 그 때는 에덴 동산의 사과마냥 강남클럽의 매니저는 70만원 정도를 추가로 지불하면 평생회원권으로 승급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추가로 카드결재도 했다.
하지만, 이미 그 때도 나처럼 횡제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올해 2월. 나는 좀 더 열심히 운동을 해보겠다고 연예인이 받는다는 퍼스널 트레이닝까지 받기 시작했다. 아니 받는다기 보다는 퍼스널 트레이닝 40세션을 구입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예전처럼 술과 씨름 하는 것보다는 몸은 조금 더 피곤했겠지만 야간에운동을 하는 것은 참 좋았다. 특히 야외에서 운동을 하기 어려운 비오는 날에 트레드밀을 달리 던 상쾌함은 이제 씀쓸함으로 다가온다.
사실 몇 가지 징조가 있기는 있었다. 경영학에서 나오는 X, Y 이론에 딱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캘리포니아 트레이너들은 우울해 보이는 사람이 꽤 많았다. 특히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보이는 젊은 트레이너들은 락카룸에서 늘상 그만 둔다는 말을 했다.
트레이너들이 회사의 요청을 해도 잘 교체되지 않는다는 컴퓨터 마우스도, 고장난지 꽤 되보이는 강남 클럽의 앨리베이터도 지금 생각하면 뭔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Get out of here!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4월 초. 가랭이가 찢어지는 카드할부로 회원권 구입과 PT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던 30대 초반직장인을 불쌍히 여겨 하늘은 최후의 개시도 내렸었다.
4월초 이상하게 가장 붐빈다는 오후 7시에서 9시 사이가 아닌데도 강남 클럽의 트레드밀 앞 쪽 줄은 2호선 신도림역 같았고, 곧 압구정 클럽이 문을 닫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그래도 나는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카이사르의 충고를 믿지 않았다.
어제 저녁부터 내가 한 일은 우선 확연한 금전적 피해를 최소화 하는 일이었다. 해어진 애인이 사준 물품을 정리하는 것처럼 인터넷을 몇 시간이나 뒤져서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구제방안들을 알아보았고, 결국 그 알아낸 구제방안은 20만원 이상 물품을 카드로 할부 구입 후 3회 이상 분할 납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을 경우에는 매번 찢어버리는 카드 전표 뒤장에 나오는 "회원의 항변권"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항변권"을 행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에 회사에서 화장실에 가서 '소비자보호원'에 전화를 해보았으나 양재대로에서 번듯이 잘 서있는 소비자보호원의 상담전화는 ARS로 계속 똑같은 목소리만 들려주었다. 정확히 믿을 수 없지만 우리의 네형(네이버 검색)이 시키는대로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안되는 글솜씨로 '내용증명서'를 작성하고 4부 출력하고 점심시간에 잽사게 회사 근처 우체국까지 달려가 내용증명서를 보내고 가슴에서 꺼내는 K카드는 K은행에서 아시아 최고 카드라고 떠드는 S카드로 결재한 내역들에 대해서 S은행에서 철회/항변 요청서까지 작성하다 보니 점심시간은 이미 지나 버렸고, 귀사 시간이 늦은 만큼 회사에는 별 자랑도 아니지만 캘리포니아 망해서 피해본 사람이 또 여기 있다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거짓말을 조금만 타서 잘 휘저으면 내가 당한 사기 중에 최고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여자에게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다가 "넌 참 좋은 사람이야"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만큼 분통이 터진다.
이번에는 나는 절대 참 좋은 사람으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우선은 카드 철회/항변 요청서 제출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기다릴 것이고, 제출결과의 처리가 늦어지면 소보원에 서면으로라도 상담도 받을 것이다.
커뮤니티가 형성되지 않으면 내가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집단 소송을 할 것이다. 내 금전적인 손해도 손해이지만, 나에게 전화를 해준 트레이너를 포함하여 캘리포니아에서 일을 하던 트레이너들도 참 안됬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거나 운동선수를 꿈꾸다 트레이너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디있는지 모르는 씨더블유엑스코리아(주) 경영진에서 웹사이트에 올린 공지문은 전혀 피해자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 내용이어서 더 슬프다.
정신없었던 2008년 4월 15일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