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na Homme+ 2015. 5] 운동장으로 간 아웃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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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으로 간 아웃도어
생뚱맞은 이야기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웃도어 브랜드는 이미 국내 스포츠 시장에 슬쩍 들어와 있다.
야구장에도 가 있고, 골프장에도 가 있다.
Words 김형식(스포츠 에이전트) Editor 이우성
봄이지만 야구경기를 '직관'하기에는 아직 쌀쌀하다. 프로야구 팬이라면 야구장에 가기 전, 좋아하는 선수 유니폼을 챙기겠지만 두툼한 보온용 재킷만은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를 타인이나 팀 스포츠를 보는 관람 스포츠(watching sports)와 본인이 직접 활동을 하는 참여 스포츠(doing sports)로 나눌 때, 이제 아웃도어 브랜드는 관람 스포츠는 물론이고 참여 스포츠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불과 2년 전까지 주요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야구장에 펜스 광고를 하는 정도였다. 브랜드 노출(exposure)을 목적으로 관람 스포츠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것. 하지만 올해 프로야구 총 10개팀 중 무려 네 팀이 아웃도어 브랜드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과 아웃도어 브랜드 역시 보통 사이가 아니다. 작년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스포츠 의류 부문 후원사는 ‘휠라(Fila)’에서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로 변경되었고 2016 리우올림픽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포함, 2020년까지 팀코리아(Team Korea)는 노스페이스가 공급하는 트레이닝복과 시상복을 착용하게 된다. 노스페이스는 상반기 TV 광고 모델도 연예인이 아닌 배드민턴 국가대표 이용대 선수를 선택했다.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과 비교하면 국민적 관심은 다소 낮지만2015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스포츠 의류 부문 후원사도 아웃도어 브랜드인 ‘블랙야크’다.
아직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국가대표 선수 경기복까지 공급하지 못하지만 참여 스포츠 시장 진입을 원하는 입장에서 향후 경기단체는 물론이고 선수 개인 후원을 포함해 한층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가능성은 충분하다. 올해 3월초 손연재 선수는 휠라가 아닌 노스페이스 재킷을 입고 해외 대회 출전을 위해 출국했다. 또 노스페이스 페이스북에서는 노스페이스 트레이닝복을 입은 손연재 선수 사진도 올라왔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손연재 선수 스포츠 의류 개인후원사가 휠라에서 노스페이스로 변경된 것을 알 수 있고, 앞으로 노스페이스에서 손연재 선수가 소속된 경기단체인 대한체조협회 후원을 못할 이유도 없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스포츠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아웃도어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 간의 공통점 때문이다. 일상에서 가벼운 활동을 할 때와 달리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할 때는 기능성 의류와 운동화를 착용해야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 당연하지만 이런 운동을 할 때 적합한 제품들이 스포츠나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들이다.
글로벌 브랜드 중에서 이와 같은 유사점을 활용하여 스포츠와 아웃도어 분야 모두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대표적인 브랜드는 살로몬(Salomon)이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스키’ 종목과 관련된 제품을, 아웃도어 분야에서는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 종목 제품을 중심으로 각 분야에서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휠라’와 ‘아디다스’도 스포츠 브랜드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 ‘휠라 아웃도어’와 ‘아디다스 아웃도어’를 전개하고 있다. 반대로 국내에서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이 스포츠용으로 사용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웃도어 브랜드가 만든 등산용 바지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요즘 등산용 바지는 다양한 원단으로 제조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등산용 바지 원단은 기능성 섬유인 ‘쉘러(Schoeller)’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등산이 취미인 중 · 장년층 소비자 중 일부는 골프장에 갈 때도 쉘러로 만든 등산용 바지를 입었다. 신축성은 물론이고 빗방울 같은 액체가 묻더라도 가볍게 털어낼 수 있는 발수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골프 스윙을 할 때 큰 불편이 없는 아웃도어 브랜드 경량 구스다운 재킷 역시 싸늘한 날씨라면 골프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작년 아웃도어 브랜드 K2에서 골프 브랜드인 ‘와이드앵글(Wide Angle)을 론칭했고 올해 상반기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에서 골프 라인을 선보였다. 아웃도어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 간에 ‘기능성 제품’이라는 연결고리가 있기에 가능한 영역 확장이다.
두 번째 이유는 국내 아웃도어 시장 포화이다. 최근 몇 년간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을 거듭해온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대부분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계속 비슷한 제품들을 과다하게 출시하면서 포화 상태가 되었다. 작년 겨울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효자상품이던 헤비다운 재킷이 판매가 예전만 못해서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포화 상태인 시장도 접근 방식을 달리하면 새로운 시장이 될 수도 있다.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작년 겨울 한국인 클라이머 한정희 씨의 등반 모습을 포함한 글로벌 광고 영상과 사진을 겨울 캠페인 일환으로 활용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이랜드리테일과 업무제휴를 통해서 아디다스 아웃도어 단독 매장 1호점을 NC백화점 강서점에 개점했다. 아디다스는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와 달리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 20~30대를 타겟으로 상반기 중 10여개 매장을 추가로 오픈할 예정이다. 골프 시장 역시 일부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포화 상태로 규정되지만 ‘와이드앵글’이나 ‘데상트 골프’와 같은 신규 브랜드들은 젊은 층을 겨냥한 차별화된 제품을 바탕으로 양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스포츠 시장 진출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을 위한 과제는 명확하다. 아웃도어 브랜드 입장에서 이상적인 등산과 골프를 함께 즐기는 소비자가 아니라 스포츠를 좋아하고 스포츠 브랜드 제품을 즐겨입는 소비자인 ‘스포츠팬(Sports fan)’을 사로잡는 것이다. 아직 스포츠팬이 흔히 '추리닝'으로 통용되는 트레이닝복을 사러 아웃도어 매장에 가는 것은 뭔가 어색한 일이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만든 트레이닝복 품질이 스포츠 브랜드 제품과 동급이거나 더 좋다고 가정해도 수많은 스포츠 브랜드 트레이닝복을 우선 선택을 할 수 있는 스포츠팬을 설득하기에 ‘품질 좋은 제품’이라는 물질적 혜택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포츠 브랜드 트레이닝복을 입었을 때와 같은 심리적 만족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착용하는 뉴에라(New Era) 모자가 야구팬에게 주는 만족감은 같은 모양, 품질의 타브랜드 모자가 주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스포츠팬에게 심리적 만족을 줄 수 있는 방안은 스포츠마케팅이다. 하지만 스포츠마케팅은 장기 목표를 수립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예상보다 훨씬 많은 투자를 하는 동시에 신중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이다. 앞서 언급된 팀코리아를 한 번 살펴보자. 과거 팀코리아 유니폼 후원사였던 워킹화 브랜드 린(Ryn)뿐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 리듬체조, 레슬링 등 개별경기단체 후원까지 병행한 휠라(Fila)조차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팀코리아만 가지고 스포츠팬을 사로잡기는 역부족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 경기를 TV중계로 본다고 생각해보자. 결정적인 골장면이 클로즈업 될 때 선수들 경기복에 있는 나이키 브랜드 로고인 스우시(swoosh)만이 보일 것이다. 또 팀코리아 유니폼 후원사는 축구팬이라면 응원 시에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레플리카(Replica)와 같이 대량 판매가 용이한 제품들을 판매할 수 없다.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경기 시상식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입었던 시상복 브랜드 로고가 노출 효과는 있겠으나 이 시상복을 스포츠팬들이 입고 활보하는 풍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스페이스가 이미 팀코리아 후원 계약 시 대한체육회에 적지 않은 금액을 지급했겠지만 스포츠팬들을 사로잡기를 원한다면 좀 더 장기적이고 정교한 스포츠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더구나 이제 SPA에서 내놓는 스포츠용 제품들도 무시할 수 없다. 스웨덴 SPA 브랜드인 H&M은 소치 동계올림픽 스웨덴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공급했고 지속적으로 의류와 악세서리는 물론이고 신발을 포함한 다양한 스포츠용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유니클로의 경우에는 더 공격적인 스포츠마케팅을 전개 중이다. 유니클로는 남자 테니스 랭킹 세계 1위인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와 4위 니시코리 케이(錦織圭)를 개인 후원하고 있고 국제테니스연맹(ITF)이 주최하는 휠체어 테니스 투어 타이틀 스폰서이기도 하다. 또 유니클로 골프 홍보대사인 애덤 스콧(Adam Scott)은 2013 마스터즈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현재 남자 골프 세계 랭킹 4위이다. 유니클로에 별도 테니스나 골프 라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니클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후원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품질이라는 본질을 떠나, 스포츠팬이라면 그 의류들을 다시 한 번 보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스포츠팬 입장에서 아웃도어, 스포츠 그리고 SPA 브랜드들의 경쟁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들에게 수많은 제품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제품만을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만약 같은 조건이라면 스포츠에 대한 진심을 보여주는 브랜드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광고물로 생각하는 프로야구 구단 유니폼은 후원하지만 야구팬이 원하는 응원용 유니폼 저지는 팔지 않는 아웃도어 브랜드를 야구팬이 과연 간택할까? 작년 프로야구 꼴등인 한화 이글스가 올해 스포츠 브랜드 미즈노와 내놓은 새로운 유니폼 중 일부가 온라인 판매 첫날 매진되었다. 스포츠팬을 기다리는 아웃도어 브랜드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ARENA HOMME+ May. 2015 P 264~5)
부족한 글을 잘 정리해주신 이우성 기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